어느 예비군의 편지

윤종신

집 떠나와 버스 타고 어디로 가는지
오늘 하루는 나라에 몸을 맡기련다
우리 동네 지켜보려 한다

부모님께 꾸중 듣고 서러운 아침은
반갑지 않은 한 동네 친구 만나면서
힘든 하루 고된 날 예고한다
어색해진 군복 속에 숨겨진

무력해진 나의 근육은
이제 말을 듣지 않고
쉬려고만 한다
피로해지는 나의 젊음이여

가고 있다 빠르게 가고 있다
단 한 번뿐인 겁 없는 계절이
곧 다가온다 꿈보다 후회 많은
아저씨라는 길고 긴 계절

입대할 때 그 눈빛은
일생에 단 한 번
그때뿐일까
아무리 힘주어 부릅떠도
떠오르는 걱정에 늘어진다

어색해진 군복 속에 배었던
기대뿐인 나의 출발은
아직 늦은 것 같지는 않아
반도 안 된 나의 인생을
다시 믿어본다

오고 있다 빠르게 오고 있다
잡힐 것 같은 뿌듯한 계절이
곧 다가온다 든든히 나를 믿는
아버지라는 길고 긴 계절

곧 다가온다 든든히 나를 믿는
아버지라는 길고 긴 계절

아버지라는 길고 긴 계절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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